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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컬트칼럼] 세상은 불공평하다?
작성자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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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16-04-07 1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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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783


저는 요즘 공의, 공평, 공정함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왠일인지 집중적으로 이 관념과 씨름할 상황에 맞닥뜨립니다.

고품격 힐링 점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도, 역시 이 문제를 곱씹게 됩니다.


세상은, 대우주는, 신은, 불공평합니다. 어느 누구의 Asc. 도수는 최고의 품격을 보여주고, 어느 누구는 하잘 것 없는 격을 나타냅니다. 삶이 그 사실을 증명하지요. 최고의 운 흐름에 들어서 봤자 그저그런 삶의 연속인가 하면, 가장 힘든 운의 흐름을 타고 있어도 심사가 좀 불편한 정도인 사람도 있습니다. 원초적으로 이런 불공평함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참 맥이 빠집니다.


어쩌다 보니, 저의 젊은 시절은 공평-평등-정의에 집중한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공평함'에 대한 콤플렉스를 갖게 됐습니다. 공평함은 곧 자비이며 사랑의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자주 리더의 자리에 있으면서, 공평함에 모자라지 않는지 스스로를 검열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또한 젊은 시절의 이상을 나름 잘 지켜나가고 있다는 자부심도 갖고 있었습니다. 오컬트에 입문하고 스승으로부터 제일 많이 들은 이야기가, 우주법칙은 공평함이 아니다, 그런 미망에서 벗어나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지적에 대해 처음에는 완강했고, 그리고 가끔, 점점 자주 고개를 끄덕이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이야기의 본질과 마주하며 진심으로 공부하고 있는 중입니다.


우선 제자들의 모습을 지켜봅니다. 저처럼 공평함에 연연하는 분들을 주목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공평함을 강조할수록 점점 더 관계와 상황이 불공평해지는 사태를 목격하게 됩니다. 책임이 증발하고 유지의 힘이 추락합니다. 관계와 상황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내가 공평함이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상황을 떠올리며, 내가 목격한 사실과 연결하여, 하나하나 짚어 봅니다. 생각은 "과연 공평함이란 무엇인가?"에 이르게 됩니다.


창조-진화의 모든 과정과, 그것을 재현하는 우리 삶은, 같은 패턴을 반복합니다. 분출하는 에너지를 정리하여 방향을 주고, 그것을 조직화하여, 구체적 형태가 현실화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 모든 과정에 연속성이 가능하려면, 공평함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말하자면 규칙, 법, 다르마가 필요합니다. 축이 없으면 바퀴는 돌아갈 수 없거든요. 축의 가치는 공평함에 있습니다. 어떤 상황과 조건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공평함입니다. '기계적' 공평함입니다. 원인과 결과, 인과의 법칙이 보편법칙이 되게 하는 힘이기도 합니다.




공평함을 유지시키는 힘은 카발라 생명나무 왼쪽 기둥, 즉 공의의 기둥에 있습니다. 분출하는 에너지에 방향을 부여하는 것, 체계화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힘을 잘라내는 것, 구체화시키고 고정시키는 것, 모두 '공의(公義)'의 범주 안에 있습니다. 公은 공평함이며, 義는 목적입니다. 창조와 진화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것만 살아남도록 하는 기계적이며 무자비한 장치입니다. 이것이 진화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힘입니다.


물론 이것만으로 진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진화 자체는 품고 기르고 확장하는 힘 자체가 전제되어야 가능하니까요. 이것이 오른쪽 자비 기둥의 특성이겠지요. 품고 기르고 확장하는 과정이 반복됩니다. 그 다음엔? 네, 다른 퀄리티로 비약하는 것이 진화의 수순입니다. 그런데 목적을 위해 칼을 휘두르는 과정 없이는 양질 전환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죽고 다시 사는 것. 아니, 죽어야 다른 퀄리티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음. 그것이 우리 세계의 순환 룰입니다. 다른 질(質)로의 비약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공의의 힘입니다. 질적 비약이 일어나는 순간, 그것은 티페레트의 존재양식입니다.


공의의 기둥 가장 높이에는 공의의 원천, 까르마의 주, 비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공평함은 비나의 심장입니다. 까르마, 원인과 결과의 법칙이 살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공평함이라는 축이 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질적 비약이 일어나는 순간, 도태되는 부분을 도려내고 살육하는 과정이 무섭다? 그렇다면, 품고 기르고 확장하는 양(量)의 축적만 계속된다면 그건 어떤가요? 훨씬 더 무서운 일이지요. '다름'이 없는 시간의 반복이 이어질 테니까요. 공의는 다른 질로 비약할 수 있게끔 하는 시테(크로노스가 쥐고 있는 낫)로 상징됩니다. 공의의 기둥 한가운데 있는 게부라(화성)가 곧 시테입니다.우주가 확장하기 시작한 이래, 우주 즉 신의 목적은 진화입니다.                      




한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 한 삶을 끝내기까지, 끊임없이 진화합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유아기와 노년기가 다르며, 모든 세포는 죽고 다시 태어납니다. 이 모든 것이 공의 덕분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무자비한 기계적 공평함이 있습니다.

한편, 내가 맞닥뜨리게 되는 모든 사건은 원인이 있습니다. 인과법칙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원인과 결과의 범위를 넓혀 보면, 나라는 에고의 주인인 영(spirit)이 간직하고 있는 모든 진동의 기억과 흔적이 지금 나의 욕망과 충동과 조건과 상황과 반응을 빚어내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기계적 까르마 덕분입니다.


모든 것이 내 탓이다? 그럼 제도는? 이 시대는? 이 세계의 시스템은? 역시 기계적 까르마의 결과이자 또 다른 원인입니다. 개별적 나보다 앞서는 집단적 까르마의 범주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 상황에 놓인 것은, 우리가 어떤 순간 침묵했기 때문이며, 어떤 순간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어떤 순간 바로 그 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공평하게도... 내가 이 나라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은 내 까르마에 따라 공평하게 던져진 미션이 여기 지금 이 집단의 까르마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세계는, 대우주는, 신은, 지극히 공평합니다. 원인과 결과의 범위를 넓혔을 때만 알 수 있는 깨달음입니다. 공평은 자비가 아니라 공의이며, 확장이 아니라 제한이며, 품기가 아니라 잘라냄입니다. 내가 품었던 모든 진동의 기억을 되살리는 힘이며, '다른 나'를 보장해주는 힘이기도 합니다. 나의 영이 다른 퀄리티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베어내고 잘라내는 힘, 시테이기도 합니다.


이제 저는 비로소 공평함 콤플렉스에서 참으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원인과 결과의 고리, 인과법칙의 보편성을 무시하는 것이야말로 공평함을 저버리는 일이며, 신의 의지와 진화라는 목적을 거스르는 일임을 분명히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정은주 /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와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전시 콘텐츠 기획, 카피라이팅, 출판 등에 종사해왔다.

점성학, 카발라, 마법 등을 연구했으며, 현재 좋은글방 대표로 오컬트 관련 서적 출판 및 헤르메스학연구소 운영중.

번역서로 <헤르메스학 입문>, <소환마법 레시피>, <마법사 프라바토와의 인터뷰>, <미스티컬 카발라>, <소환마법실천> 등이 있다.


* 본 칼럼은 아르고나우트 회원들의 수행과 지적 연구를 지원하기 위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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