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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강좌] 기도 그리고 마법
작성자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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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16-04-07 15:5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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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165

※ 본 강좌는 좋은글방과 까페 아르고나우트에 동시 게시됩니다.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오프라인 강좌에서조차, 많은 분들이 음(-)의 기둥에 배속되어 있는 힘에 대해 어려워합니다. 물론 오랫동안 '음'은 곧 '악' 이라는 등식이 일반화 되어 왔고, 그런 선입견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 겁니다. 제 경우에도 음의 힘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이 훨씬 어렵습니다. 그러나 마스터 바르돈도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마법사는 음(-)의 힘에 대해서도 통달하고 그 힘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음은 곧 악'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음=악'이  아닙니다.

 

음(-)의 힘, 여성적 힘은 기본적으로 형상이며 제한입니다. 힘이 형상을 입는 순간 죽음=소멸의 운명이 부여됩니다. (우주적 여성 원리를 대표하는 것이 곧 비나 세피라라는 것을 기억해 보세요!) 의지와 힘에 형상을 부여하고 제한하는 대립자가 바로 음=여성적 원리입니다. 이 힘은 우주의 진화에 반드시 불가결한 원리지요.

한 쌍의 대립자는 서로 의존적으로 존재합니다. 하나만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한 쌍입니다. 대립자는 통합 원리 안에서 균형 즉 안정상태에 이를 때 비로소 제대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양(+)과 음(-)만으로는 두 힘이 서로 상쇄될 것 아니겠어요? 다시 말해서 세계 만물은 이 한 쌍의 대립자와 그 사이의 상호작용과 통합을 통해 존재합니다. <창조-유지-파괴>, 바꿔 말해서 <확장-통합(교류)-수축>의 순환인 것이지요.

 

신앙은 물원리의 가장 수준 높은 모습입니다. 신앙은 음(여성원리)의 기둥 가장 꼭대기에 위치하는 세피라 '비나'에 배속되는 속성입니다.

마법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의지는 불원리의 가장 수준 높은 모습니다. 그 힘-충동은 양(남성원리)의 기둥 가장 꼭대기에 위치하는 세피라 '호크마'에 배속됩니다.

믿음과 기도는 산을 여기서 저기로 옮길 만큼 강력하지만 작동시킬 힘의 원천이 필요합니다. 자궁만으로는 생명을 잉태시킬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자궁은 에너지를 담고 그 힘을 형상화시키는 그릇일 뿐입니다.

한편 마법행위는 우주의 흐름 안에서 힘의 본성에 따라 형상을 입을 때 실재화됩니다.(마법이 이루어집니다!) 정자는 그저 생명을 품고 있는 힘일 뿐, 실제로 생명을 키워내는 것은 자궁이며 어미의 젖이니까요.

("의지 아래 사랑"이라는 정언을 이와 관련시켜 생각해 보세요! 새롭게 뭔가 보이죠?)

 

이 두 원리가 어떻게 통합원리 안에서 실재화될까요?

통합원리는 신의 섭리이자 은총입니다. 아카샤 원리입니다. 중앙기둥의 가장 위에 위치한 케테르에 배속되는 원리입니다. 모든 마법작업과 기도는 이를 통해 실재화됩니다.  

마스터 바르돈이 진정한 마법사가 힘을 갖게 될수록 신의 섭리를 경외하며 머리를 조아리게 된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지요. 실제로 수행을 하며 힘을 체험하는 많은 분들이 신의 섭리에 순종하며 신앙심이 무럭무럭 자라난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때의 신은 우주적 힘이자 법칙이자 존재입니다!) 결국, 신앙과 기도 - 의지와 마법작업은 하나가 되는 것이지요.

"믿음이 앎(깨달음)으로" 대체되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헤르메스학이나 힌두체계에서는 이 과정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내 안의 자기력(물원리-신앙)이 우주적 자기력(신의 은총=생명에너지 : 전기력을 품은 자기력)을 끌어당겨 몸 안에 채우면, 이 힘이 내 안의 전기력(뱀의 힘 : 자기력을 품은 전기력)을 일깨워 끌어올림으로써 합일에 이르게 되는 상태!  

 

우리의 기도와 마법행위는 각 차원의 에너지를 진동시키면서 가장 근원의 차원에 이르러 신의 섭리(제1현현)와 맞닿아 '힘-형상'(천상의 삼각형) 원리를 끌어당깁니다. 이 힘은 마치 창조의 첫 과정처럼, 각 차원을 하강하면서 형상의 실재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의 기도와 마법행위는 현실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대부분 문제는 이러한 원리에 있지 않죠. 대부분 나의 욕망이, 현실화 하기 위해 기도하거나 마법작업을 하는 내용이, 우주의 흐름, 나의 카르마와 어긋난다는 데 있습니다.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투덜댑니다. 왜 마법사가 자신의 욕망들을 현실화하지 못하느냐고 손가락질 합니다. 그러나 "내가 기도한대로 다 이루어졌다면" 하고 생각할 때 아찔한 일이 한두 가지인가요? 바로 눈앞도 가늠하지 못한 채 간절히 바랐던 수많은 일들... 지금 생각하면 나에게 독이 되었을 나의 욕망들... 물질계의 시간을 지나온 뒤에도 이렇게 명료하게 알 수 있는데, 하물며 몇 생을 거듭하며 진보해야 할 영의 시야로 바라본다면 오죽 하겠어요! 나의 간절한 욕망은, 나의 카르마를 극복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사실!    

그래서 성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기도는 신의 섭리 안에서 가장 좋은 모습으로 실재화하게 되어 있다는 거죠. 저는 성서의 이 구절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수한 경험을 했으니까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한편, 이런 측면에서 마법작업은 위험요소가 많습니다. 능력을 갖췄다고 전제할 때, 훨씬 직접적으로 힘을 형상화할 수 있고 우주법칙, 그러니까 신의 섭리에 어긋난 결과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현실적으로, 균형 법칙에 어긋난 힘의 실재화도 가능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몇 생의 긴 삶을 염두에 둔다면, 신의 섭리 안에서 제대로 마법작업을 해야할 겁니다.  

이 문제에 대해 다이온 포춘은 <미스티컬 카발라> 178쪽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케테르에 대해 명상하면 마법 실행의 성과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꺠닫는다. ...(중략) ... 마법사는 그저 힘을 다루어 형상으로 현현하게 하는 데 관여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힘이 궁극적으로 어떤 형상을 취할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 힘에게 맡겨둘 뿐이다. 힘의 본성과 가장 일치되는 형상을 띨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법사가 자신의 제한된 지식을 가지고 만들어내는 디자인보다 훨씬 정확하게 우주법칙에 맞아떨어질 것이다. 이것이 모든 마법실행의 진정한 열쇠이며 유일한 정당성의 기반이다. 우리의 변덕이나 형편에 맞춰 우주를 바꿀 수는 없다. 단지 신중한 마법 작업만이 허용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성장할수록, 두려움과 겸손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혼이 고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어떤 능력을 얻게 되는 경우보다 더 큰 저주는 없다"는 사실을 문득문득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문제와 장애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할지, 기도와 마법작업을 통해 어떤 영향을 행사해야할지 고민이 깊어집니다.  

내 삶에 작용하는 음(-)의 원리는 '악'이 아니라, 연합하여 선을 이루게 될, 카르마의 주가 선사하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진보와 성장의 힘을 담아 키워낼 자궁이니까요!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곧 신앙이자 기도의 영역일 겁니다.

 

   

정은주 /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와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전시 콘텐츠 기획, 카피라이팅, 출판 등에 종사해왔다.

점성학, 카발라, 마법 등을 연구했으며, 현재 <좋은글방> 대표로 오컬트 관련 서적을 출판하고 있다.

번역서로《헤르메스학 입문》, 《소환마법 레시피》, 《마법사 프라바토와의 인터뷰》, 《미스티컬 카발라》, 《소환마법실천》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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